Gihun Noh                            

 

C.V

Artist Statement

Article

 

 Works                                

 

The city of Gumi Project (2009- )

 

Line 1 (2013-2016)

 

Sync Reset (2015)

 

Mise en Scène (2009-2013)

 

Concrete Romance (2013)

 

White Ghost Island Project (2013)

 

Report of Subjectivity. Red Nation (2012)

 

series Aesthetic Surgery (2011- )

   1. Suture (2011)

   2. Gauze Dressing (2011)

   3. Count (2011)

   4. Shoot (2012)

   5. Aesthetic Surgery(2012)

   6. Make-up(2014)

 

 Commission                           

 

series Silent Readiong (2015- )

   1. Ki Hyongdo (2015)

   2. No Surprises (2016)

 

Black Night (2014-2015)

 

 Publication / Shop                   

 

Line 1

Mise en Scène

White. Ghost. Day. Note.

Report of Subjectivity. Red Nation

 

 

 

 

©Copyright 2016

Gihun N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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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찍힌 사진들, 잘못 찢긴 육신들

-노기훈의 작품들에 고하는 한 주관(主觀)의 보고서 / 최정우 / 2013

Wrongly Taken Photo, Wrongly Torn Bodies

-A Personal Perspective on NOH Gihun's Works

CHOI Jungwoo / 2013


노기훈 작업에 관한 짧은 17개의 주석 / 이대범 / 2014

17 Short Annotations on Gihun Noh's Work

LEE Daebum / 2014


동시대라는 허구적 '개념'을 향한 시선 / 이수정 / 2015

A Gaze Towards the Fictonal 'Concept' of Contemporary

Yi Sujung / 2015


광장의 풍경 바깥으로 / 유지원 / 2015

Outside the Landscape of the Square

Yu Jiwon  / 2015


또 다른 파리, 텍사스: 중국집에서 웨딩홀까지 / 정현 / 2016

The Other Paris, Texas: From Chinese House to Wedding Hall

Jung Hyun / 2016


푸석한 사진 사이로 스며드는 시선: 노기훈의 사진 / 이기원 / 2016

Seen through the Dry Photos: Gihun Noh's Photography

iggyone  / 2016


봄의 제전 전시글 '1호선' / 이보경 / 2017

The Rite of Spring

LEE Bokyoung  / 2017

 

못 찍힌 사진들, 잘못 찢긴 육신들

노기훈의 작품들에 고하는 한 주관(主觀)의 보고서

 

최 정 우

 

 

 예술은 하나의 가치관(價値觀)이며 세계관(世界觀)이다. 이 당연한 말을, 그 의미를, 그것도 그 한자의 뜻과 함께, 이토록 새삼스레 지금 다시 반복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나의 가치관이며 세계관이어야 할 예술이, 특히나 이 시대에 매우 자주,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이자 세계가 되거나 또는 그렇게 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치가치관의 차이란, 혹은 세계세계관의 차이란 과연 무엇인가. 혹은 이 물음을 조금 달리 묻자면, 왜 예술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의 가치관이자 세계관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왜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또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 이것이 하나의 물음이며, 그것도 내가 특히 노기훈의 작품들을 마주하고서 묻고 싶은 하나의 물음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바로 이 하나의 물음을 둘러싸고 작성되는 하나의 보고서, 곧 노기훈의 작품들에 대한 내 주관의 보고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주관이란 또한 무엇보다 主觀이라고 쓰고 읽으며 되감는 의미의 개념이기에. 그렇다면 문제는 바로 이 이라는 말 혹은 행위, 곧 보이고 드러나는 방식 혹은 바라보고 드러내는 방식에 대한 물음이 될 것이다. 내가 저 물음들 속에서 새삼 되새겨 묻고 싶은 것은 (‘가치관’, ‘세계관뿐만 아니라 주관속에서도 보이며 또한 바라보고 있는) 바로 이러한 의 뜻, 곧 봄과 보임의 개념과 실제인 것. 그러므로 나는 바로 이 물음을 공들여 반복해야 한다, 노기훈이 작가로서 그리고 작품으로써 스스로 말하고 있듯, 힘들게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인간과 신 사이의 동형성(isomorphism)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기에.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힘들게 반복하는 일이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긴 해도 과연 신적인 것에도 부합하는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바로 여기에 노기훈의 작품들이 일관되게 관철시키고 있는 하나의 테제, 곧 인간에 대한 하나의 규정이 있다. 이 테제는 일견 그 자체로는 유달리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인간적인 조건에 대한 규정은 일종의 신학을 이루며 또한 예비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텐데, 이때의 신학이란 가장 낮은 것의 신학, 다시 말해 가장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것의 무상함과 고결함이 지닌 인간적 신성(human divinity)의 신학이기도 하다. 노기훈의 작품들 안에서 인간이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인간의 신체란, ‘짓이겨질 수 있는존재, 혹은 찢겨나갈 수 있는존재에 다름 아니다. 예를 들어 그의 일련의 작업들인 <성형수술(Aesthetic Surgery)> 연작이 그러한 테제를 관철시키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꿰매기 혹은 봉합(suture)으로 표현되는 이미지들의 구성과 해체, 찢어발김과 이어붙임은 스스로에게 행하는 폭력, 말 그대로 뼈를 깎고 살을 에는 고통, 미적이 되고자 하는 어떤 의지의 드러남(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암묵적 폭력을 내재화한 무의지 혹은 무의식의 파괴적 봉합, 곧 미적이 되지 않고는 버티거나 견뎌낼 수 없는 어떤 현실의 드러남(현시)이기도 한 것이다. 노기훈이 보여주는 이미지들 안에서 희생자 또는 피해자는 방관자 또는 공조자의 경로를 통해 가해자의 자리에 가닿는다. 단순히 미적이 되고자 하는 방관자이자 수행자로서의 우리 동시대인은 스스로를 미적 단위(aesthetic unit)라는 기준에 희생시킴으로써 일종의 사회적 피해자가 되는 듯 보이지만, 그 희생자/피해자의 자리는 또한 거꾸로 바로 그러한 미적 단위의 폭력적 체제가 고착하고 영속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해자 혹은 공범자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미필적 고의를 지닌 희생자이자 동시에 무고한 가해자라는 지극히 역설적이고도 이중적인 규정 안에 놓이게 되는 것, 이것이 또한 인간은 짓이겨지거나 찢겨나가는 존재라는 테제의 또 다른 변주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또는 어떻게 오해하고 거부하며) 또한 이 상황에 어떻게 대면(對面)할 것인가 (말 그대로 어떻게 얼굴을 마주할것인가) 하는 것이 노기훈의 작품들이 묻는 물음들 중 하나이다. 명동 한복판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의 무심한 발걸음 아래 깔려 짓이겨지고 찢겨나가는 것은 바로 그 불특정 다수의 얼굴, 그들 혹은 우리의 짓이겨지고 찢겨나간 얼굴인 것, 고로 우리의 얼굴은 바로 그렇게 구성되어 있고 또한 해체되고 있는 것. 따라서 이것은 말 그대로 미적인(aesthetic)’ 투쟁이 되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의 육체는 말 그대로 바로 그 미적인 투쟁의 전장(battleground)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여, 힘들게 반복하는 것이 인간과 신 사이의 동형성을 증명하는 일이란 뜻은, 보다 더 근본적이고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오히려 짓이겨지고 찢겨나가며 마모되거나 마멸될 수 있는 존재라는 인간의 신체적 특성이 거꾸로 바로 신성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노기훈의 작품들이 묻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적이며 동시에 신적인 인간조건에 관한 재고와 되물음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 조건은 조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한계로 보인다. 예를 들어 <미장센(Mise-en-scène)> 연작 중 11덕수궁의 화면 속에는 대한문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그들이 든 촛불들이 일종의 분신(焚身)과도 같은 이미지를 드러내주고 있다. 몸이라는 한계를 넘는 어떤 분신(分身)이기도 할 저 불꽃의 이미지 안에서 그 불가능한 한계가 하나의 가능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어렵다, 한계를 조건으로 바꾸기에는, 한계 안에서 조건을 ()꽃피우기에는, 여전히, 상황은, 너무도, 지난하다. <미장센> 연작을 이루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유령과도 같은 실체 없는 인간 군상의 흥망성쇠 속에서도 여전히 굳건히도 살아 있으며 꿈쩍도 하지 않는 공간과 그 공간의 구조, 사회적 미장센의 물리적이고도 심리적인 구조를 적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노기훈의 <2번 도로> 연작에 가장 가깝게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 연작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말 그대로, 다른 어떤 의미 없이, 그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 작품들이 작가가 스스로 말하듯 고향에 대한 어떤 향수에서 온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향과 고향 아닌 곳 사이를 가로지르는 어떤 비가역적인 무기력을 현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직 작가 자신이 아는 인물들, 그에게 가장 익숙할 풍경들만이 사진을 가득 채운다. 그 사진들을 바라보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곳이 어디인지, 그곳에 널브러져 있는 사물들이 어떤 것인지, 아무도 없는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건물들이나 장소들이 어디에 있는 것이며 어떤 역사/이야기를 지닌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정지용의 유명한 시구를 차용하자면, 그러나 매우 쓸쓸한 어조로 차용하자면, 말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그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을 것 같고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듯 보이는 그런 인물들이 사진 속으로부터 사진 바깥을 무표정하거나 심드렁하게 응시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표정이 없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볼 게 없으며 다시 말해 그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특징 없는 풍경을 뒤로 하고 그런 인물들, 그런 사물들이 그렇게 존재한다. 그러나 다시 말해서, 다시 한 번 반복하여 말해서, 바로 그러한 무표정과 특징 없음 그 자체가 도시, 혹은 더 정확히는 공업화하고 산업화한 도시의 풍경, 그러한 풍경이 지닌 가장 특질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그것은 일견, 말 그대로 잘못 찍힌 사진처럼 보인다, 말 그대로 버려진사진들, 사진첩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과거의 사진들,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려도 전혀 모를 그런 과거로부터의 사진들, 생각하면 그저 잠시 아쉽고 말 뿐인 그런 잊힌 사진들로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러한 사진들이 하나둘씩 모여 노기훈 작가 개인의 도시 구미를, 바로 그 구미라는 이름의 도시를, 그 도시가 구획하는 지도를, 그 지도가 보여주는 단면들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한 순간 한 순간, 한 공간 한 공간, 한 단면 한 단면들이 모여 구미라는 도시의 느슨하지만 촘촘한 지도를, 곧 개인적이지만 집단적인 지도를, 아니 어쩌면 한국이라는 근현대적 시공간의 어떤 전체적이고 총체적인 조감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이 사진들은 기이하게도 단번에 (그리고 여러 번에 걸쳐) 나를 사로잡았는데, 나는 사진의 피사체인 인물들, 사물들, 공간들이 마치 내가 나의 개인적인 과거의 장면들 속에서 자주 봤던 것들인 양, 그 사람이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인 듯, 그 사물이 마치 내가 오래 쓰던 것인 듯, 그 공간이 마치 내가 이전에 가끔씩 방문했던 장소인 듯, 익숙하면서도 낯선 착각 아닌 착각에 빠지는 날것의 경험이 주는 선정성, 곧 어떤 경험의 선정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사진들이 나를 사로잡았던 이유는, 그 사진 속의 사람들이 전혀 어떤 아름다움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 매력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어떤 매력, 다시 말해 아름다움 없는 아름다움혹은 매력 없는 매력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다양한 순간들의 포착을 통해 도시 공간과 그 구성이라는 역사적 추상성을 거꾸로 사소하리만치 구체적이고 촘촘한 시공간 안에 담아놓는 데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이 사진들은 분명 잘못 찍힌 사진들이지만, 아니, 잘못 찍혔다기보다는 그저 아무런 사심 없이 찍힌 사진들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잘못됨혹은 무념자체가 사진이 포착할 수 있고 또 포착해야만 하는, 어딘가 어긋나고 잘못된 현실과 기억의 모습을 알려주고 그 지도를 그려내는 것이다. 그 사진들이 하나의 사진들로서 기능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이다. 사진은 정보의 채집이나 집적이 아니라 현실의 드러남, 혹은 현실 속으로 벌어진 틈새의 드러남이다. 작가가 이 사진들을 찍기 위해 사용한 것은 휴대전화나 디지털 소형 카메라가 아니라 대형 사진기이다. 그 사진기를 설치하는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작가가 피사체들과 개인적으로 나눴던 이야기를 나는 분명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이 사진들 안에 그 이야기들이 녹아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느낀다. 나는 그 이야기의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끝났는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임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이란, 예술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그럴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의 가치나 하나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곤 하는 사실은, 예술이 하나의 가치관이자 세계관이라는 것, 곧 가치를 바라보는() 방식이자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구미의 중심가 이름인 ‘2번 도로의 상징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한 지명, 특정한 지역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곳, 다른 곳을 바라보기, 다른 곳에서 보이는 것을 생각하기, 떠나간 곳에서 떠나온 곳을 바라보기, 떠나온 곳에 남겨진 사람들을 바라보기, 떠나간 곳에서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다시 바라보기, 그러한 봄과 보임의 방식을 성찰하기, 그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또 다른 사회적 시선과 예술적 성찰의 시도는 노기훈의 다른 작품 <흰령이 사는 섬(White Ghost Island Project)>이나 <콘크리트 로망스(Concrete Romance)>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백의민족이라는 허구적이고 환상적인 공동체의 이미지로 채색된 한국적 정체성이란 단지 남쪽이냐 북쪽이냐 하는 질문을 묻는 지극히 즉물적인 선택의 문제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버려진 아파트 속에서 발견된 사물들(오브제들)이 콘크리트 속에 매립되는 것은 그저 흔적으로만 남아서 일종의 부재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삶의 모순들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기훈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봄과 보임의 방식, 곧 가치관과 세계관으로서의 예술을, 새삼스럽게, 다시금, 어렵게 시작하고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작가의 말대로, 시지포스의 노동처럼 보인다, 끝없이 돌을 굴려 올려야 하는, 한없고 덧없는 노동의 반복처럼 보인다. 그러나 또한 그 반복의 노동은 동시에 저 의 의미, 예술이 예술로서 지녀야 하는 드러냄과 드러남, 봄과 보임의 뜻을 다시 새롭게 묻고 있다. 노기훈의 작품들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저 이 지닌 의미의 새삼스럽지만 필요불가결한 어떤 복권(復權), 가치나 세계가 아니라 가치관과 세계관으로서의 예술을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부활시키려는 시도,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 보이는가, 무엇이 보일 수 있는가, 그리고 또한 무엇을 볼 수 있고, 또 무엇을 봐야 하는가. 노기훈의 작품들이, 잘못 찢기고 잘못 이어진 육신들 사이에서, 그리고 가장 익숙하지만 또한 가장 낯선 기억의 잘못된 사진들 속에서, 나와 당신에게 묻고 있는 물음이다.

2013년 12월 30일

 

 

 

* 최 정 우 :

비평가, 작곡가, 미학자, 기타리스트.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같은 대학원 불문과 졸업. <사유의 악보 -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의 비평들>을 저술했고, <싸우는 인문학>, <알튀세르 효과>, <아바타 인문학>,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 등의 책을 공저했다. 연극과 무용 등 무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며, 3인조 음악 집단 Renata Suicide를 이끌고 있다. 현재 파리 국립동양어문화대학(INALCO)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Wrongly Taken Photo, Wrongly Torn Bodies

-A Personal Perspective on NOH Gihun's Works

 

CHOI Jungwoo

 

 

Art reflects values and world views(weltanschauung). The reason why we are repeating such obvious words, it's meaning, and with chinese characters no less, is because art that should be expressed in values and world view is quite often used or about to be used as a 'value' and 'world' especially in this generation. So,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value' and 'values' or 'world' and 'world view'? To reiterate, why should art be a form of 'values' and 'world view' but not 'value' or 'world'? This is a question, especially one which I ask myself when facing NOH Gihun's work. Therefore, this is a report focusing on one question, a personal subjective report on NOH Gihun's works. Subjectivity is written and read as jukwan(主觀) in chinese characters, and its meaning is meant to be pondered. So the issue is questioning the method of expressing the word or action ‘kwan ()’, in other words, a method where one is being shown and expressing the issue, or seeing for one self and expressing the issue. What I would like to ask in light of such questions is (not just 'values', and 'world view' but also what can be found, and what we are looking at in 'jukwan(主觀)') the meaning of 'kwan' - the meaning of seeing (intentional), having seen (unintentional), and what is real. Therefore, I must painstakingly repeat these questions throughout. As NOH Gihun, the artist, and his works state for themselves, the painstaking repetitiveness is perhaps the way to prove isomorphism between man and god. It must be so, most likely so.

 

The painstaking repetitiveness may be an exceedingly human aspect but is it something that befits divinity? This is where a thesis - one that regulates humans - is applied coherently in all of NOH Gihun's works. At a glance, this thesis on its own is nothing new. But at the same time the regulations on humane condition forms a 'theology' of sorts as well as a foundation. The 'theology' here is the theology of the lowest, in other words, the theology of human divinity - the most trivial, routinely meaningless, and noble. Within NOH Gihun's works of humans, and especially the human body, is an existence that can be 'mangled' or 'ripped.' For example, his serial work <Aesthetic Surgery> sequence applied such thesis. The composition and decomposition of images that depicted stitching or sutures, the shredding and piecing together represents a will to expose(express) the self violence, literally the pain of cutting bone and skin, to become an aesthetic. At the same time, to expose(reveal) a reality of tacit violence inherent in the involuntary or subconscious violent sutures, that one cannot endure or tolerate reality without becoming aesthetic. Within the images NOH Gihun portrays, the sacrificed or victims become the assailant by becoming the bystander or accessory. As a bystander or trainee who simply wants to become aesthetic we, the contemporaries, sacrifice ourselves to the standards of aesthetic unit and appear to become a form of social victim. However, the role of the sacrificed/victim in reverse has made possible the role of assailant or accessory allowing setting in and making permanent the violent structure of the aesthetic unit. To reiterate, we are 'victims of willful negligence' as well as 'innocent assailants', a paradoxical double entendre stipulation, which is another variation of the thesis that humans are existences either mangled or ripped. How we are to accept this situation (or to misunderstand and deny) or to face it (literally how to 'come face to face') is one of the questions asked in NOH Gihun's works. The random faces that are mangled and ripped in Myeongdong center by random individuals' footsteps are their or our mangled and ripped faces. In essence, this is how our 'faces' are composed and decomposed. Therefore, this is literally an 'aesthetic' fight and the human body becomes the battleground for aesthetic struggle. So, the meaning of proving isomorphism between man and god through painstaking repetitiveness, in more fundamental and in extreme terms is that if anything it proves that the characteristics of the human body, which can be ripped and torn, in reverse fit the conditions of the divine. NOH Gihun's works question such reflection and reconsideration of humanistic and divine human conditions. However the conditions seem more 'limit' than 'condition'. For example, the image of no. 11 'Deoksugung Palace' in the <Mise-en-scène> series shows people crammed in front of Daehanmun holding a candle, a sort of replica(焚身) of themselves. The image of the flame, the replica or the otherself (焚身) that surpasses the limitations of the body, allows the impossible limit to become a possible condition. However it's still difficult, to turn a limit into a condition. It's still much too difficult of a situation to ignite a condition(flame) within limits. Much of the works in the <Mise-en-scène> series represent the rise and fall of humanity, still firmly alive but phantom like and formless, hostile to physical and psychological structure of 'social Mise-en-scène', an immovable space and the structure of such space.

 

Such is why, at the same time, I focus so closely on NOH Gihun's <Second Street> series. There is nothing in that series. Literally, there is no other meaning, simply nothing. Rather than the artist's explanation of hometown 'nostalgia', I would like to suppose that it reveals a form of 'irreversible lethargy' that traverses between home and a place that is not home. The artists displays photos, portraits of people only known by the artist and landscape only familiar to him. As an one of the audience who is looking at the photos, I have no idea who the people are, where they are standing or sitting, what the objects scattered are, where the buildings and places are with nothing in the background, and what kind of history/story they hold. To borrow Jeong Ji-Young's famous verse, in a very forlorn tone, 'passable, not pretty' images of people common anywhere and really not mattering either way stares out from the photos expressionless or indifferent. They have no expression. Meaningless with nothing to see. In other words, people and objects are positioned in front of scenery quite common and featureless. To reiterate, and repeat once more, the expressionless and lack of features in itself is an indicator of characteristics of the city, or more specifically the landscape of an industrialized city. At a glance, it appears as a 'wrongly taken photo' verbatim like 'thrown out' photos. Photos of the past found by chance while organizing photo albums, forgotten or past photos that one wouldn't miss if lost. Sorry for a moment if you think about them but just that. They appear forgotten. What's interesting is that one by one such photos accumulate to become artist NOH Gihun's personal Gumi City, a city named Gumi, a city divided into maps, and form sections of the map. With nothing there and indifferent moments, one by one, place by place, section by section accumulate to form a loose but intricate, a personal yet collective map. Perhaps it draws a general overall blueprint of a modern spatial-temporal Korea. To make a personal confession, these photos strangely captivate me at first glance (and over several times), as the subjects of these portraits, objects, spaces seem familiar, like I've seen them from my past, as if they are people I know, objects I've used for a long time, places that seem like I visited often, familiar and yet unfamiliar, a delusion of delusions, the provocation of a raw experience, in short one can't help but feel the 'provocation of experience'. The photos captivated me because the people in the photos were in no way beautiful nor attractive. Namely the photos captured various moments of 'beauty without beauty' or 'attractive without the attractive' successfully capturing the historically abstract city space and structure in an upside down trivial yet detailed and intricate time and space.

 

To restate the point, these photos are clearly 'wrongly taken photos', or rather than wrongly taken, more like photos taken without agenda, but the 'wrong' or 'thoughtless' photos indicate how photos can capture or must capture the somewhat dislocated wrong reality and image of memories, and depict a map thereof. The photos function as singular photos from here onwards. The photos rather than gather or accumulate information but reveal reality or the widening gap within reality. The artist did not use the camera on his phone or a small digital camera but a large camera. In the 30 minutes it takes to install the camera, I don't know what the artist and his subjects discussed on a personal level. However, I believe that the stories are fused into the photos somehow. No, I can feel it. I don't know what the stories are but I can feel the stories within. Though I don't know how the story begins and how it ends, but I can feel that they are one story. Photography, or art, is perhaps just that or probably should be that. In other words, they are not one value or one world. The truth that we frequently forget is that art is one value and world view, it is means of viewing() value and world. However, if this was all there was to it, it would be too obvious. What is the symbolism of 'Second Street' in Gumi city center? It's not simply a name of a place or a specific area. It's another place, looking at another place, thinking about what you see at another place, staring at the place you left behind from the place you left for, staring at the people from the place you left behind, giving a second glance at the things appearing lost at the place you left for, to examine the means of having seen and showing, it's all the same. Another similar attempt at social perspective and artistic reflection is evident and without exception in NOH Gihun's other works such as <White Ghost Island Project> and <Concrete Romance>. The fictional and illusionary communional image as the white-clad people that colors Korean identity becomes meaningless when faced with an extremely realistic choice of choosing between North and South. The objects (objets) discovered at the abandoned apartments are buried in concrete, only to remain as traces, to exist in a state of absence, revealing itself as contradictions of a paradoxical life. NOH Gihun's works attempts to begin afresh, once more, and with difficulty using methods such as having seen and being shown, that is to say art reflecting values and world view. As the artist indicates, it looks like the labors of Sisyphos, compelled to continuously roll a boulder uphill, endless and futile repetitive labor. But moreover the repetitive labor questions not only the meaning of 'kwan (, view)' but also the meaning of what art should encompass as art in revealing and exposure, having seen and being shown. NOH Gihun's works are not trying to once again reinstate the necessary meaning of 'kwan()' in value or world, but cautiously yet with certainty revive art in values and world view. Therefore we must ask, what is visible, what can be visible, what can be seen, and what to see? NOH Gihun's works asks such questions from among the wrongly torn and wrongly pieced together bodies, and within the most familiar yet most unfamiliar wrongly taken photos.

 

 

 

* CHOI Jungwoo:

Critic, composer, aesthetician, and guitarist. Graduate of Seoul National University's College of Humanities Aesthetics Department, and French Language & Literature at Seoul National University's Graduate School. CHHOI is the author of <Music of Reason - Hybridized Theory and Critique of Discord for Rage> and coauthor of <Humanities in Dispute>, <The Althusser Effect>, <Avatar Humanitas>, <Exploration of Modern Political Philosophy> etc. He is an active composer of theatre, dance and performance music, and currently leads a musical trio called Renata Suicide. CHOI currently teaches students at the Institut National des Langues et Civilisations Orientales in Paris.

 

 

 

 
  artworks Gihun Noh - CHOI Jung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