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hun Noh                            

 

C.V

Artist Statement

Article

 

 Works                                

 

The city of Gumi Project (2009- )

 

Line 1 (2013-2016)

 

Sync Reset (2015)

 

Mise en Scène (2009-2013)

 

Concrete Romance (2013)

 

White Ghost Island Project (2013)

 

Report of Subjectivity. Red Nation (2012)

 

series Aesthetic Surgery (2011- )

   1. Suture (2011)

   2. Gauze Dressing (2011)

   3. Count (2011)

   4. Shoot (2012)

   5. Aesthetic Surgery(2012)

   6. Make-up(2014)

 

 Commission                           

 

series Silent Readiong (2015- )

   1. Ki Hyongdo (2015)

   2. No Surprises (2016)

 

Black Night (2014-2015)

 

 Publication / Shop                   

 

Line 1

Mise en Scène

White. Ghost. Day. Note.

Report of Subjectivity. Red Nation

 

 

 

 

©Copyright 2016

Gihun N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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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찍힌 사진들, 잘못 찢긴 육신들

-노기훈의 작품들에 고하는 한 주관(主觀)의 보고서 / 최정우 / 2013

Wrongly Taken Photo, Wrongly Torn Bodies

-A Personal Perspective on NOH Gihun's Works

CHOI Jungwoo / 2013


노기훈 작업에 관한 짧은 17개의 주석 / 이대범 / 2014

17 Short Annotations on Gihun Noh's Work

LEE Daebum / 2014


동시대라는 허구적 '개념'을 향한 시선 / 이수정 / 2015

A Gaze Towards the Fictonal 'Concept' of Contemporary

Yi Sujung / 2015


광장의 풍경 바깥으로 / 유지원 / 2015

Outside the Landscape of the Square

Yu Jiwon  / 2015


또 다른 파리, 텍사스: 중국집에서 웨딩홀까지 / 정현 / 2016

The Other Paris, Texas: From Chinese House to Wedding Hall

Jung Hyun / 2016


푸석한 사진 사이로 스며드는 시선: 노기훈의 사진 / 이기원 / 2016

Seen through the Dry Photos: Gihun Noh's Photography

iggyone  / 2016


봄의 제전 전시글 '1호선' / 이보경 / 2017

The Rite of Spring

LEE Bokyoung  / 2017

 

푸석한 사진 사이로 스며드는 시선 : 노기훈의 사진

글 이기원

*본 원고의 일부는 ‘월간 포토닷’ 2015년 12월호에 실린 <미장센> 리뷰(흩날리는 풍경을 파고드는 경계인의 시선)를 정리하고 덧붙였음을 밝힙니다.

 

노기훈은 근대화 이후 한국사회에 유물처럼 남아있고 또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어떤 현상들을 작업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풀어놓는다. 민주화 이후 하나의 관성처럼 작동하는 ‘집회’라는 행사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미장센’ 시리즈), 근대화의 출발점인 지하철 1호선 주변의 풍경에서 근대화의 흔적을 관찰(‘1호선’ 시리즈)한다. 또한 지금은 작가의 고향이자 한때 산업화의 전초기지였던 구미의 오늘날을 고향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들 세 작업에는 모두 인물이 주 피사체로 등장하지만, 관객은 프레임 속 인물의 모습보다는 이들이 속한 풍경에 먼저 주목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 특유의 푸석한 이미지들은 그가 보여주고픈 것이 인물도, 풍경도 아니라는 점을 지시한다. 결국 노기훈이 작품을 통해 말하려는 것은 ‘사진의 이야기’가 아니라 작업을 구상하고 진행하며 느낀 자신의 심상이다. 덕분에 이들 세 작업은 얼핏 하나의 문제의식으로부터 뻗어나온 가지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미장센’ 시리즈는 2009년 6월 노무현 대통령 추모집회부터 2013년 12월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까지 어떤 정치적 성향이나 목적을 가리지 않고 서울 곳곳의 광장에서 열렸던 집회 풍경을 대형카메라로 기록한다.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에서 얻은 집회 정보-장소, 인원, 시간만이 명시된-를 기준으로 자신이 촬영하려는 집회가 어떤 행사인지조차 알지 못한 상태에서 광장으로 향한 작가는 사전에 통보된 집회 시간만큼만 필름에 노출을 주어 사진을 찍는다.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3~4시간까지 이어지는 집회 시간동안 열린 셔터는 집회 참가자와 단체에 대한 단서를 무심하게 흩날려 버린다. 이 작업은 마치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집회시간동안 광장을 바라보는 작가 자신에 대한 기록으로 존재한다. 이런 지점에서 장노출은 퍼포먼스의 기록을 위한 도구로만 남는다. (이러한 퍼포먼스적 요소는 작가의 다른 작업에서도 이어지는 특징이다.) 덕분에 관객은 각각의 작품에 붙은 캡션과 홀로 선명하게 남은 집회 장소에 대한 정보만을 기준으로 해당 집회의 성격과 내용을 유추한다. 하지만 각각의 사진에 숨은 집회의 내용을 애써 알아채려고 하는 것 역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가가 이번 작업을 통해 던지는 물음은 집회의 내용이나 정치적 성향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행사의 무대가 되는 광장과 그저 흔적으로만 남은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노기훈은 실제 집회나 시위가 제 기능을 발휘했던 민주화 시기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 오늘날의 집회를 두루 관찰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시민과 단체들이 이미 그 한계를 실감하면서도, 딱히 대안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집회라는 형식만 ‘최후의 보루’처럼 고수할 수밖에 없는 실상을 목격한다. 집회의 목적과 방향성이 자신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진 않지만 ‘연대’라는 흐릿한 관성으로 자리를 지키거나 혹은 어떤 집회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집회를 위한 집회’를 위해 동원돼 공허한 외침만을 반복하는 무력한 군중의 모습은 그들이 점유한 광장에 비하면 한없이 가볍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작가의 카메라에 비춰진다. 그중에서도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철제 설치물에 서로 등을 마주하고 걸려있는 두 쌍의 사진은 작가의 건조한 시선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2012년 대선 전날(12월 18일)과 몇 달 후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던 2013년 2월 25일 광화문 광장의 풍경, 그리고 2011년 한나라당, 2012년 통합진보당 당사 앞 집회 모습은 정치·사회적인 시선과 그곳의 사람들을 지워내고 ‘집회’라는 현상 자체만을 조명한다. 이처럼 같은 장소의 사뭇 다른 모습이나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두 장소의 유사한 풍경은 집회가 열리는 ‘광장’이라는 공간의 의미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미장센’이 한국사회의 광장이 소비되는 방식을 외부의 시선으로 덤덤하게 보여줬다면, ‘1호선’은 좀 더 적극적으로 작가 자신의 관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차이는 작품 자체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미장센’의 작품들은 사진 속 장소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읽어낼 수 있고, 또한 ‘(그 성격과 관계없이)집회’를 찍었다는 것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1호선’을 구성하는 사진들에서는 쉽사리 그곳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몇몇 사진에서 1호선 역사가 등장하지만, 비중은 크지 않다. 작품 바깥의 캡션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곳이 어느 역 근처인지 알아낼 수 있는데, 결국 관객이 볼 수 있는 건 ‘1호선 주변의 어떤 분위기’일 뿐이다. 물리적인 ‘1호선’이 그대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작품은 더욱 모호해지지만, 그 앞에 선 관객은 작가가 어떤 의도로 작업을 선보였는지 좀 더 고민하게 된다. 결국 ‘1호선’은 작가 개인의 시선이 전면에 드러난 ‘1호선 관찰기’처럼 작동한다.  동인천에서 노량진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만큼이나 오래된 지하철 1호선의 역사는 그 자체로 무엇을 말하진 않지만, 선로 주변으로 이어지는 1호선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인천에서 서울로 향할수록 조금씩 다르게 존재한다. 작가는 한 덩어리로 묶이면서도 각기 다르게 존재하는 ‘1호선’을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분류한다. 이는 어떤 결과를 상정하고 시작할 수 없으므로 계획없이 떠나는 모험에 가깝다.

이처럼 어떤 ‘모험’을 상정하는 작업의 경우, 촬영 과정에서 작가 자신도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덕분에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재빠르게 촬영할 수 있는 소형 카메라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노기훈은 굳이 대형 카메라와 대형 삼각대를 짊어지고 ‘1호선’ 시리즈를 진행했다. 촬영 준비에만 10여 분이 소요되는 대형 카메라의 특성상, 순간적인 장면을 포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대형카메라는 주로 작품 자체의 조형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선택되지만, 노기훈의 사진은 대형 카메라를 사용한 것 치고는 너무나 푸석하다. 그렇다면 결국 그는 대형 카메라의 장점도 활용하지 않으면서, 그 단점만 극대화되는 작업방식을 택한 것인가? 이와 관련해 노기훈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진이 테크닉면에서 잘 찍은 것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이어서 자신이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는 건 ‘최대한 힘을 빼고’ 싶었기 때문이라 밝힌다. 여기서 말하는 ‘힘’은 작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피사체의 ‘힘’일 것이다. DSLR로 사진을 찍힐 때와 스마트폰으로 찍힐 때 피사체(모델)의 태도가 다르다는 걸 생각하면, 더군다나 영화에서나 본 듯한 대형 카메라 앞에 세워진 이들이 평소보다 위축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옷매무새를 좀 더 다듬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이처럼 보다 큰 카메라는 대상을 보다 더 주눅들게 만든다. 그렇게 힘이 빠져버린 피사체를 담은 사진은 인물이 중심에 등장하더라도 초상사진이 아닌, 풍경사진처럼 작동한다. 이는 촬영과정뿐 아니라 결과물에도 적용된다. 피사체의 힘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작가의 시선이 빼곡하게 채워진다.

이런 맥락에서 ‘1호선’ 시리즈를 선보인 두 번의 전시인 <1호선>(KT&G 상상마당 갤러리, 2016)과 <사진미래색>(고은사진미술관, 2016)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1호선’시리즈를 보여줬다는 점은 흥미롭다.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1호선>은 지하철 1호선 자체의 맥락보다 작품의 이미지에 집중했다. 여기에는 전시장과 전시의 성격(수상자전)이 갖는 조건들도 작용했을 테다. 하지만 노기훈은 전시가 서울에서 열렸다는 측면에서 전시장을 찾은 관객 각자가 경험한 나름의 ‘1호선’이 존재할 것으로 상정했다고 말한다. 서울 전시에서 ‘1호선’시리즈는 ‘노기훈이 본 1호선’이라는 하나의 레이어로 제시되면서, 관객은 평소 자신이 경험했던 1호선의 인상을 여기에 겹쳐보는 방식이라면, (역시 수상자전이긴 하지만) 부산에서 열린 <사진미래색>에서 ‘1호선’은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지하철 1호선’을 부산으로 옮겨온다. 서울의 관객과 부산의 관객이 느낄 지하철 1호선의 거리감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1호선 역이 표기된 인천-서울 지역 지도와 함께 디스플레이된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1호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부산 관객에게 인천-서울을 잇는 하나의 선으로써 ‘1호선'이 갖는 의미를 전달하고, 이를 기반으로 ‘노기훈이 본 1호선’을 다시 살펴보게끔 한다. 덕분에 두 전시에서의 ‘1호선’은 미묘하게 다른 의미로 작동하며 이는 그의 다른 작업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부산 전시에서의 ‘1호선’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시선이 투영됐다는 점에서 ‘미장센’의 연장선상에 놓인다면, 작가 개인의 시점을 강조한 서울 개인전에서의 ‘1호선’은 ‘구미’시리즈와 가깝게 자리한다.

이제 노기훈의 시선은 가장 먼저 시작했지만,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구미’시리즈를 향한다. 인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수평적 공간인 1호선과 ‘위에서 내리 꽂아’ 탄생한, 서울로 ‘올라가려는’ 욕망이 여전히 존재하는 수직적 공간인 구미는 어떤 지점에서 교차할 수 있을까.